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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의사

나라사랑큰나무 0 842

우리민족의 강렬한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린 65세 청년의 쾌거 왈우 강우규 의사

서울역 광장을 울린 굉음   콰쾅  사이토 마코토 신임 조선 총독이 마차에 오르려던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습니다. 총독은 맞지 않았지만 총독부 관리 등 37명이 다치거나 죽은 현장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백발 노인,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지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신임 총독의 얼굴을 익히고 수차례에 걸쳐 행사장인 서울역을 답사한 끝에 명주수건에 숨겼던 폭탄을 던진 사람. 1919년 9월 2일, 서울역 복판에서 벌어진 이 사건의 주인공은 환갑을 넘긴 백발의 노인 강우규 의사였습니다.

31세 25세 32세 그리고 65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당시 안중근 의사 31세   일왕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졌을 당시 윤봉길 의사 25세  일왕 히로히토를 저격했을 당시 이봉창 의사 33세  그리고 1919년 서울역 의거 당시 강우규 의사의 나이 65세. 조국 독립이라는 대의 앞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친일파의 밀고로 끝난 드라마   어느 누구도 노인이 폭탄을 던졌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기에 강우규 의사는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름 뒤  친일파 순사 김태석의 밀고로 체포되어 형장에서 일기를 마칩니다.

독립을 향한 민족의 의지를 알리다  비록 목표한 바는 이루지 못했지만 강우규 의사의 의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제는 을사늑약이 조선의 자발적 협조로 체결되었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의거로 독립을 향한 민족의 의지가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심은 충격   내가 죽어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의 바람대로 의거 이후 수많은 조선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의열단 수장이었던 김원봉 선생도 강우규 의사의 영향을 받았다 전해집니다.

청년들에게 독립의지를 심어 주다  청년교육은 의사와 평생을 움직인 동인이자 숙제였습니다. 함경남도 덕천 출신의 한의사였던 그는 의술을 펼처 모은 돈으로 사립학교를 세웠고, 경술국치 이후 북간도로 이주해도 광동학교를 설립해 나라의 동량인 청년교육에 힘썼습니다.

대한국민노인동맹단   그리고 의거   을사늑약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진 강우규의사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해 청년독립투사들을 지원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신임 총독 부임과 함께 언어와 교육이 말살될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총독 처단을 결심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서울역에 가면 꼭 강우규 의사를 만나 보세요    정부는 강우규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1999년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여 그 업적을 널리 알렸습니다.      의거 현장인 서울역 광장에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언제고 그 앞을 지난다면 누구보다 빛났던 그의 독립의지를 떠올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