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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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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쇼   하버드대 출신의 수재가  6.25전쟁에 참전한 까닭은?

지금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이수중이던 청년 윌리엄 해밀턴 쇼.  그는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재 입대를 결심합니다.   지금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과 한국 국민을 사랑한 청년 그대로 미국에 남아 있었다면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쇼가 멀고 먼 한국까지 날아와 목숨을 건 전투에 참가한 이유, 그것은 한국과 한국 국민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은 제2의 고향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쇼는 한국으로 파견 나온 선교사 부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고교시절까지 한국에서 생활한 그는 한국의 언어와 문화, 지리에 능통했습니다. 한국명은 서위렴 2세. 그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자 친구의 나라였습니다.

한국 해군의 태동기를 함께하다    입버릇처럼    Home    이라 말하던 쇼는 미 해군 제대 후 미 군정청 소속 민간인 교관으로 한국에 돌아와 조선해양경비대사관학교  현 해군사관학교  에서 생도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한국은 자꾸 돌아오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    학위수여식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쇼는 맥아더 장군의 최측근으로 임명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친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쇼는 지상군에 지원합니다.

총성과 함께 스러진 짧지만 아름다운 삶    서울 수복을 위한 전투가 곳곳에서 한창이던 1950년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쇼는 총성과 함께 쓰러졌습니다. 한국과 한국인들을 위해 과감히 목숨을 걸었던 벽안의 청년은 그렇게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상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다   쇼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부모님과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쇼의 묘비에는 성경에서 가져온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윌리엄 해밀턴 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