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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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나라사랑큰나무 0 1221

나는 잔다르크처럼 나라를 구하는 소녀가 될테다  유관순 열사우리 민족에게는 내 나라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조차 죄가 되고 옥에 갇혀 모진 고초를 당해야 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1919년에는 신분  직업  사상 종교 남녀노소 지역을 초월하여 한 목소리로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1919년 봄   이화학당에 다니던 한 소녀가 만세 시위를 위해 고향 천안으로 내려갔습니다. 동네의 유지와 어른들에게 참여를 설득하고 시위에 쓸 태극기도 직접 만들었습니다.그리고 시위 날이 되자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합니다.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의 여러 약소민족들은 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어서고 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을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도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그의 연설에 고무된 군중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고 일본 헌병들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시위에 참여한 그의 부모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의 찔려 그의 눈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헌병에게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되는 중에도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부모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너희들이다.  며 재판을 거부합니다.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높은 기개를 지녔던 그의 이름은 유 관 순 그는 시위 주동자는 바로 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다 석방하라  고 일본 경찰에게 호통을 쳤으며  이감된 서대문 형무소 감옥 안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1920년 3.1독립만세 1주년을 맞이해 옥중만세 운동도 펼쳤습니다.이런 악착같은 독립운동가를 그냥 두고 볼 리 없던 일제는 열사를 지하 감방에 가두고 혹독한 고문을 했습니다. 결국 수감된 지 1년이 겨우 지난 1920년 9월 28일  유관순은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눈을 감습니다.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고  독립만세운동 이후에 고문 받아 순국한 것을 알지만 누구 못지않은 기개와 사연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열사가 순국했을 때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귀와 코가 잘리고  손과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죽음 같은 고문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  어린 소녀의 몸으로 조국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살신성인하신 유관순 열사의 유지를 받들고 그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난 잔다르크처럼 나라를 구하는 소녀가 될 테다.  잔다르크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의 영웅 자랑스러운 유관순 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