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6.25전쟁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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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호국인물 만나기] 찰스 그린 호주 육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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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Green

호주 육군(중령)

(1919.12.26~1950.11.2)

상훈 : 은성 무공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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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별,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산화하다! 11월의 625전쟁영웅은 625전쟁 동안 혁혁한 공을 세운 찰스 그린(Charles Green) 호주 육군 중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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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Green

호주 육군(중령)

(1919.12.26~1950.11.2)

상훈 : 은성 무공 훈장

 

 

 

 

찰스 그린 중령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24세의 나이로 호주 최연소 대대장이 되어 활약했습니다. 종전 후에는 일반인으로 돌아와 부인과 어린 딸의 가장으로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새로이 창설된 정규 육군 첫 호주 보병대대 지휘관으로 선임되어 다시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린 중령은 1950 9 8일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그린 중령이 담당하던 대대는 새로 창설되어 훈련 수준이 빈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린 중령은 체계적인 훈련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몇 주 만에 적군에 맞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견실한 전투부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린 중령과 호주 육군 제3대대는 928일 부산에 상륙한 뒤 영연방 제27연대에 배속되어 연천전투박천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북진을 계속했습니다.

 

1950 10 29일에는 정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또 한 번의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달천강 근처에서 진지를 구축하던 중 그린 중령은 북한군이 쏜 포탄 파편에 복부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즉각 근처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늘 침착하고 조용히 부대원들을 챙기는 지휘관이었던 그는 치명상을 입고 후송되는 동안에도 다른 부대원들의 안위를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현재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당시 제3대대의 정보장교였던 알프 알전트는 그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의 통솔은 항상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믿을 수 있는 명확하고 간결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항상 선두로 나가 있었고 주력 중대 그룹 바로 뒤에서 지휘했습니다

 

그린 중령은 전투에서의 뛰어난 공을 인정받아 미국 은성훈장을 비롯하여 15개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당시 3살이었던 딸을 키우며 평생 수절한 올윈 여사가 전사한 남편을 회고하면서 쓴 책 <The name's still charlie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는 호주전쟁문학의 뛰어난 성과로 꼽히고 있습니다.

 

세계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먼 타국에서 찾아와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찰스 그린 중령! 그와 같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던 덕분에 우리의 소중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월에는 지휘관으로서의 모범을 보인 그린 중령을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