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6.25전쟁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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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호국인물 만나기] 오금손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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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지키리라! 아버님, 

이 딸이 당신의 유지를 받듭니다."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포항 형산강전투에서 북한군 6명을 사살하고, 적군의 포로가 되어도 극적으로 탈출하여 임무를 수행하며 묵묵히 전장을 지켰던 ‘오금손 대위’가 선정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외동딸이자 광복군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1931년 2월 20일 북경, 오금손 대위는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이 되지도 전에 양친을 잃고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났는데요, 1943년에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일찍부터 항일투쟁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토록 꿈꾸던 해방 이후, 오금손 대위는 조국으로 돌아와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여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오금손 대위는 다시 한 번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진 입대를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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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초,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오금손 대위가 부상자들을 돌보던 중 북한군이 병원을 기습했습니다. 광복군 시절 사격과 전투훈련을 철저하게 받았던 오금손 대위는 북한군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2계급 특진, 대위로 진급하게 됩니다. 

 

또한 금화와 철원 중간지점에 있는 케이(K)고지 전투 중에서는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되고 말았는데요. 끝이 없는 고문과 회유가 이어졌지만, 오금손 대위는 절대 굴하지 않은 채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다 북한군이 교전에 빠진 순간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부대에 복귀하여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탈출 과정에서 오른쪽 다리에 관통상, 허리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게 되어 후유증이 심해져 안타깝게도 군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74세로 타계할 때까지 ‘백골할머니’라는 별명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안보 전도사로서 활동하다 지난 2004년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었습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국가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오금손 대위! 늘 조국만을 생각했던 그 마음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